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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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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7 잊히지 못할 소설속의 명장면 7 풍운의 삶을 거쳐 온 길상이 어린 날 들었던 우관도사의 뜻을 좇아 완성한 관음탱화. 산전수전의 시간을 넘어 온 그가 화가가 된 아들 환국에게 그림을 보이기가 쑥스러워 피한 자리, 환국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조바심을 내며 관음탱화와 마주한다. < 환국은 법당으로 갔다.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낡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한결 선명한 관음탱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관음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관음상을 응시한다. 오른 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든 수월관음水月觀音, 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청초한 선線에 현란한 색채, 가슴까지 늘어진 영락瓔珞이며 화만華鬘은 찬란하고 투명한 베일 속의 .. 더보기
토지 6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6 < 흰빛 보랏빛의 과꽃을 예쁘게 묶은 꽃다발을 여자는 들고 있었다. 천천히 물가까지 간 그는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아니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강물을 향해 꽃다발을 휙! 던지고 다시 누군가를 애절하게 부르는 것 같은 음성이 들렸다. -중략- 어느덧 여자는 망부석이 된 듯 움직이지 않았고 말도 없었다. 강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옷자락을 휘날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중략- 여자는 몸을 굽히며 앉았다. 엎드려서 두 손에 물을 걷어 올리며 얼굴을 씻는다. 아마 그는 울었던 모양이다. 꽤 오랜 시간 얼굴을 씻은 뒤 머리를 묶은 손수건을 풀었다. 소담스런 머리칼이 양어깨 위에 물결치듯 흔들렸다. 얼굴을 닦고 일어선 그는 손수건을 펴서 비쳐보고 두세 번 털더니.. 더보기
토지 5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5 동학장수 김개주와 윤씨 부인의 아들, 구천이 김환은 소설의 중반부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출생의 한을, 형수를 사랑하고 비명에 그 여인을 보낸 한을, 빼앗긴 나라 그 한을 안고 산천을 떠돌다가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렸었다. 필생의 동지이자 벗, 그리고 사돈인 송관수의 유해가 신경에서 도솔암으로 돌아오고 소지감과 해도사와 함께 한 자리에서 울분을 토하고 나온 강쇠는 놀라웠던 경험, 죽은 김환과의 산중문답을 회상한다. < ...... 만물이란 본시 혼자인데 기쁨이란 잠시, 잠시 쉬어가는 고개요 슬픔만이 끝없는 길이네. 저 창공을 나는 외로운 도요새가 짝을 만나 미치는 이치를 생각해보아라. 외로움과 슬픔의 멍에를 쓰지 않았던들 그토록 미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강줄기 같.. 더보기
토지 4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4 낙인과도 같은 어미 임이네에 대한 처절한 기억, 철없던 풋사랑에서 중인 환시리에 모멸로 끝난 장이와의 사랑까지 자신이 겪어야 할 삶의 풍상을 나름대로 이겨 낸, 이 용의 아들 홍이, 설날 아침, 살아 생전 용의 바람대로 아버지의 고향인 평사리를 떠나 간도로 갈 마음을 먹고 용의 무덤을 찾은 장면. ‘토지’ 13권 (4부 1권) P 94- 96 사랑 없는 결혼으로 맺어졌던 강청댁의 강짜와 한 번의 실수로 얽힌 임이네와의 악연, 필생의 사랑 월선과의 업. 가슴에 숱한 사연과 그리움을 묻고 오롯이 한평생을 견뎌 낸 용에게 아들 홍의 독백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며 찬사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이 한세상 두드러진 그 무엇 없이 평범하게 살고 마는 범부일진대... 홍.. 더보기
토지 3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3 3.1운동도 기대와 달리 사그라지고 광복은 무망해 보이는 암담한 조선의 현실에서 자신의 옛 정인인 기화(봉순)와 맺어진 이 상현을 공박하던 서 의돈과 장안 부호의 아들 황 태수가 나누는 대화 장면. 절망에 찌든 지식인들의 비뚤어진 자존심, 암울한 술자리 장면의 대화에 부아가 나서 몇 번이나 그냥 넘길까 하다가 다시 보니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우리의 이야기 같아 눈길이 머문다. 그나저나 대화 참 맛깔스럽다. 도저한 경지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경리 ‘토지’ 10권(3부 2) P 89 더보기
토지 2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2 박 경리라는 작가는 그 시절에 어떤 견문과 지식의 업을 쌓았는지 ‘토지‘를 읽어 가다 동학에 관한 얘기며 하얼빈, 연해주, 용정에 걸친 민족주의자들의 논리를 접하면서 아득한 감탄을 숨길 수 없다. 그러다 소설 속 인물들의 얘기로 돌아오면 실감이 나다 못해 실없이 웃게도 하고, 함께 분노하게도 하고 어떨 땐 혼자 눈물까지 닦고 나서는 도대체 이 무슨 조화속인지 싶게 만든다. 파란만장한 ‘이 용’의 삶, 그리고 무당 딸 ‘월선’과의 사랑. 설운 사랑이야 도처에 왜 없을까마는 이 두 사람의 사연을 그리는 장면마다 처연한 마음이 일고 월선의 운명 장면, 극도로 절제한 간결체의 문장 앞에 급기야 뜨거운 가슴이 울컥하고 만다. ‘토지’ 8(2부 4권) P243-244 혼자서 염을 .. 더보기
토지 1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1 ‘토지’ 1부 4권 416p 이루지 못한 풋사랑은 어디 한둘이었으며 가슴 한 켠, 생채기 같은 기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품었던 마음 한 번 제대로 말로 뱉어 보지도 못하고 끝내 갈라 설 수밖에 없었던 소설 속 어린 남녀의 이별 장면이 싸늘한 겨울날 오후, 식어버린 중년의 가슴과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돌아간다손 치더라도 다시 이루지 못할 숱한 사연들에 보내는 정념이 유행가 가사처럼 ‘강 건너 등불’같다. 2017. 12. 08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