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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Paradise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눈물 속에 '춘수'로 특별할 것도 없는 한 남자가 말했다. "사랑합니다.", "결혼 할 순 없지만 결혼하고 싶어요.", "이 느낌 평생 간직할께요.", "음 술 진짜 맛있네요." '희정'이라고 특정할 것도 없는 한 여자가 말했다. "참 솔직하셔서 좋으시겠어요.", "이런 걸 주우셨어요?", "이게 우리의 결혼반지예요."

내가 꼽는 이 영화의 백미! 두 편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중, 두번째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언제 쯤 나도 저런 적이 있었을까? 없어서 참 심심한 삶이었던, 그 알량한 용기가 없어 이런 찌질한 모양새마저 한 번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나에게는 회한이거나 적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날들에 대한 때 늦은 추억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 그 순간만은 다른 것들을 제쳐 놓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결혼할 수 없지만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내가 맺은 수많은 관계들의 양상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이든 아니든 간에.

"좋은 데 가서 바람 좀 쐴까요? 여기 답답해요." / "우리 둘만 나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집까지만 바래준다고 할까요?" / "사람들은 다 할 만큼만 하고 사는거예요."... "강원도 갈래요. 우리" / "강원도... 어디?" / "경포대 같은데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현실과 기억 사이, 다테마에와 혼네 사이, 의무와 욕망 사이...

"집에 들어 가야죠, 우리 바람 많이 쑀어요." / "집에 들어 가실거죠? 다시 나올 순 없죠? 조금만 더 얘기하고 싶어요." / "정말요? 그럼 다시 나올께요. 그런데 그때까지 기다리실거예요? 기다려요."

가로등 불빛이 추위만큼 휑한 거리에서 오돌오돌 떨며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래 이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삶의 순간들마다 마주쳐야 하는...

술에 취해 뜬금없이 별 상관없는 여자 둘 앞에서 팬티까지 내린 남자에게 그녀들이 예술가라서 이해해주겠다더라고 건넨 여자의 말에 "이해를 잘해주셨구나. 감사해요." / "고마워요. 저도."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나에게는...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다.

2015.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홍상수 감독 정재영 김민희 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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