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W Film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 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거룩한 식사'


'B&W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Memory  (0) 2012.09.13
Memory  (0) 2012.09.11
Memory  (0) 2012.09.07
Memory  (0) 2012.09.03
Memory  (0) 201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