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실수를 범하기 쉬우니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우리도 아버지와 함께 죄사함 받은 무리에 들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기를 소망합니다.’ - The Crown에서 발췌
아버지
증조부님의 의협심을 닮으시고 할아버지에게서 낭만을 물려받으셨던, 할머니를 닮아 기분파셨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던… 그렇게 정이 많아 따뜻했고 정이 넘쳐 어머니와 형제분들, 자식과 며느리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르셨던 아버지.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안 닮으려 노력했지만 닮아야 할 도타운 정과 패기는 닮지 못했고
조급한 성정은 그대로 물려받은 장남이 아버지의 일주기에 그리움과 애통함으로 아버지를 되뇌입니다.
국민학교 졸업시험에서 그리 어렵다는 진주사범학교에 입학하고도 남을 점수를 받으시고 선생님이 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남자가 좀스럽게 살기 싫다고 줄행랑을 치셨다던,
중학교 때 할머니를 여의시고 가세가 몰락하자 호기롭게 미국행을 결심, 해군에 하사관으로 입대하셨으나 좌절하셨던,
이성극장 시절,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전포동에 영화약국 2층 건물을 지어 올리셨다고 자랑하시던,
50년도 지난 어린 시절, 이른 새벽 우리를 깨워 학교 운동장에서 체조를 가르쳐 주시던,
그 즈음 약주가 과하셨던 날이면 요절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독일에 계셨던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고 내 볼을 잡고 통곡하시던,
온천장의 폐지장, 동상동에서 골재상을 하시며 햇볕에 그을려 얼굴은 검게 변하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 하셨던,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공부보다 소중한 게 있다고 명화극장 시간이면 TV를 보라고 안방으로 부르시던,
깊은 밤 공부하는 아들에게 버터에 밥을 볶고 미소된장을 끓여 주시며 먹고 하라시던,
동상동 집에서 부산대학이 뭐 그리 먼 길이라고 수시로 생계 수단인 모래 싣는 트럭이라도 타고 등교하라고 등을 떠 밀어주시던,
결혼하고 스물일곱살에 현역으로 입대한 아들이 안쓰러워 속초의 신병교육대로 찾아와 아들보고 가야겠다고 억살을 부리시고, 다시 자대에 배치된 아들의 선임하사를 찾아와 인삼상자를 내미시고 잘 보살펴 달라고 머리를 숙이셨던,
아들들보다 더 좋을 줄은 예전에 몰랐다시며 손자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퍼주셨던,
파킨슨으로 넘어져 얼굴과 팔다리를 긁히고 골절을 당하시면서도 절절했던, 아버지의 새벽기도길이 차마 잊히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지만 어떤 경우는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경우는 깃털보다 가볍다고 일찌기 사마천은 사기에 적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가 가볍다고 감히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를 여윈 슬픔이 이처럼 깊고 무거울 줄을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불효가 시도 때도 없이 뼈에 사무칩니다.
어느 날일지 훗날, 저 하늘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외나무다리’에서 ‘정다웁게’ 만나 뵙기까지
부디 이승의 고통과 미련 다 떨치시고 영면하십시오.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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