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이 끌리는 이유, 규정할 수 없는 이유로 흑백을 선호하고 대부분 흑백으로 사진을 담으면서도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것들. 사진의 유래가 서구였던 것은 차치하고 사진을 알게 되면서 품었던 화두는 ‘우리의 사진을 찍을 순 없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한 동경으로 그치고 말 망집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이유로 흑백을 택하게 된 것은 분명한 느낌입니다.
우리의 선인들은 천변만화하는 현상의 덧없음을 일찍이 간파하여 인간 또는 자연의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들을 사실적이거나 인상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현상이야 무상한 것이고 붙잡아야 할 것은 인간의 마음이란 것을 중심에 두고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형태에 구애되지 않고 나아가 색채까지 배제하는 화풍이 자연스럽게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미상불 그 어떤 대상도 ‘먹빛’과 ‘여백’으로 그리게 된 것입니다.
‘먹빛’은 무채색입니다. 무채색의 사전적 의미는 ‘흰색, 회색, 검은색처럼 명도의 차이는 있으나 색상과 채도는 없는 색’입니다. 모든 유채색은 마침내 흐려지고 바래는 것이란 생각을 넘어 모든 유채색은 무채색에서 비롯한다는 것, 모든 색채의 시작이자 완숙한 귀결이 무채색이라는 것을 선인들은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나아가 먹의 농담이 우리에게 주는 감흥은 선명하고 화려한 색채의 인상을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먹의 색은 지극히 질박하고 수수한, 관념적인 색감이면서 한편으로 무한한 계조로 색채를 넘어서는 화려한 색감이기도 합니다.
이런 색감은 사람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보는 이의 감각을 편안하게 하고 더불어 담담히 생각하게 합니다. 한 장의 그림을 두고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되는 것, 그래서 그린 이와 보는 이가 결국은 소통에 이르게 되는 매력은 먹의 색감이 주는 우리의 매력일 것입니다.
한국화의 경지를 베낄 깜냥도 못됩니다. 그렇다고 선인들께서 도달한 관념의 세계는 넘볼 수도 없는 賤品입니다. 그럼에도 몽매 속을 헤매며 라이카에 담은 흑백필름에 ‘무채색으로 마음의 한 구석이라도 잡아 보겠다는’ 이룰 수 없는 꿈 한 자락의 끝을 붙들고 갑니다.
2010.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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