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
이제는 인적도 드물어 가는 길조차 쇠락해져 버린, 들풀이 우거진 속, 거미줄을 헤치고 손잡이의 먼지를 털어 내면 구라파의 웅장한 고딕 성당, 중세풍 수도원의 위용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기억의 뒤안으로 사라져 가는, 이제는 흔적들의 공간. 현존하는 우리들의 빛나는 모습은 차라리 가식이리라. 그러나 존재가 남기는 흔적은 늘 소박하고 진실하다.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던 盛裝을 벗어버린, 낡고 퇴락한 모습으로 서있는 겨울나무처럼. 따뜻한 마음들이 낮게 중얼거리는 기도소리와 음정이 제각각인 성가의 합창, 다소곳하게 수그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목덜미와 거칠어진 마디로 모아진 손아귀들, 아름다운 소망과 신심들이 빛자락처럼 흩어져 있는, 소담한 공소들의 스산한 흔적들... 흔적들 앞에서 잊고 살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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