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슨푸’에 인질로 억류된 ‘다케치요’(훗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첫사랑을 맺었던 ‘카메히메’.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세월은 흘러 이오의 미망인이 되어 성을 지키게 된 카메히메에게 절치부심, 역경을 넘어 조상들의 성을 찾고 나아가 미카와의 성주로 세력을 넓혀가던 이에야스는 항복을 권했는데...
“처음에는 요시모토 공의 주선으로 출가하게 될 줄 알았다.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흥하는 자와 망하는 자가 걷게 될 운명의 갈림길. 같은 비라도 봄비와 진눈깨비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중략- 진눈깨비는 궂을수록 좋다. 미카와의 성주님께 항복하여 미지근한 비였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차디찬 비로 일관하겠다. 그래야 미카와 성주의 마음에 더 오래 남게 될 것이라고.”(‘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하치, 제5권 /솔 290-291쪽)
카메히메는 자결을 결심하고 조카 ‘만치요’를 통해 이에야스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카메히메는 자결하고 자신을 한 조각의 뼈도 남기지 않고 불태우게 했다는데
‘그녀가 한 줌의 재로 변한 자리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반쯤 탄 채로 남아 있었다. 더구나 남아 있는 매화나무 한쪽 가지에는 하얀 꽃이 만발해 있었다.’니 차가운 비를 품은 일지매의 향기가 매화 구경을 나선 이에야스의 가슴을 울리기라도 했을까?
우정도 사랑도 어떤 인연도 쓰레기 조각처럼 나부끼는 세상에서 ‘미지근한 비’도 못되면서 언감생심, 그 누구의 마음에 남아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 천품이나 들키지 말고 살아갈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