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못할 소설속의 명장면 7
풍운의 삶을 거쳐 온 길상이 어린 날 들었던 우관도사의 뜻을 좇아 완성한 관음탱화. 산전수전의 시간을 넘어 온 그가 화가가 된 아들 환국에게 그림을 보이기가 쑥스러워 피한 자리, 환국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조바심을 내며 관음탱화와 마주한다.
< 환국은 법당으로 갔다.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낡은 것들 속에 새로움이 한결 선명한 관음탱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관음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관음상을 응시한다. 오른 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든 수월관음水月觀音, 또는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청초한 선線에 현란한 색채, 가슴까지 늘어진 영락瓔珞이며 화만華鬘은 찬란하고 투명한 베일 속의 청정한 육신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어찌 현란한 색채가 이다지도 청초하며 어찌 풍만한 육신이 이다지도 투명한가.
환국은 감동에 전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법당을 나선 그는 절 마당에 멍하니 서서 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중략-
“아버지는 참 외로운 분 같습니다.” / 환국이 말문을 열었다. / “관음상을 본 감상인가?” / “네.” / “자네 말이 맞네. 원력願力을 걸지 않고는 그같이 그릴 수는 없지. 삶의 본질에 대한 원력이라면 슬픔과 외로움이 아니겠나.”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 “......” / “그렇게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 “세월인 게야. 자네 부친의 세월 말일세. 식을 맑게 간직하고 닦아온 자네 부친의 세월. 사람들은 대부분 본래의 때묻지 않은 생명에 때를 묻혀가며 조금씩 망가뜨려가며 사는데 결국 낡아지는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생명은 과연 물리적인 것일까?”>
토지 16권 (5부1권) 401 - 403쪽
‘때묻지 않은 생명에 때를 묻혀가며 조금씩 망가뜨리며’ 살아온 삶. ‘식을 맑게 닦고’ 살고 싶었던 것은 한낱 부질없는 바람이었던 것을. 관음탱화와 같은 삶의 성취를 꿈꿀 수나 있는 삶이었던가. 지나 온 세월은 회한에 묻히고 살아가야 할 시간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외로움과 슬픔의 언덕을 넘어 언젠가 내 자식의 눈 앞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관음탱화는 아닐지라도 부끄럼 숨기며 수수한 버들가지 하나라도 내 보일 수 있을까? 내 자식들은 그를 보아주기라도 할 것인가.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에 멍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