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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토지 4

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4

 

 낙인과도 같은 어미 임이네에 대한 처절한 기억, 철없던 풋사랑에서 중인 환시리에 모멸로 끝난 장이와의 사랑까지 자신이 겪어야 할 삶의 풍상을 나름대로 이겨 낸, 이 용의 아들 홍이, 설날 아침, 살아 생전 용의 바람대로 아버지의 고향인 평사리를 떠나 간도로 갈 마음을 먹고 용의 무덤을 찾은 장면.

 

<소나무 위에서 까치 한 마리가 장난스럽게 꼬랑지를 까딱까딱하며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내려다 본다. - 중략 – 나름대로 홍이는 아비 이용의 인간성이 자기 내부에서 하나의 소상塑像같이 완성된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인간 이용이, 홍이는 멋진 남자였다고 생각한다. 뇌리를 스쳐가는 간도땅에서의 수많은 우국열사들, 흠모하고 피가 끓었던 그 수많은 얼굴들, 그러나 홍이는 아비 이용이야말로 가장 멋진 사내였다고 스스럼없이 생각한다. 열사도, 우국지사도 아니었던 사내, 농부에 지나지 않았던 한 사나이의 생애가 아름답다. 사랑하고 거짓 없이 사랑하고 인간의 도리를 위하여 무섭게 견뎌야 했으며 자신의 존엄성을 허물지 않았던, 그 감정과 의지의 빛깔, 홍이는 처음으로 선명하게 아비 모습을, 그 진가를 보는 것 같았다. 사라져 가는 아비 자취에 대한 마지막 전별餞別의 순간인지 모를 일이었다. - 중략 -
“홍아,” / “네”
홍이는 소스라치듯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도 없다. 이름을 부르던 여자의 음성 귀에 익은 옛날의 그 음성, 홍이는 사방을 둘러 본다.
“홍아,” / “네! 어디 있어요?”
홍이는 사방을 미친 듯이 들러 본다.
“나, 여기 있다.”
파란 이끼 낀 바위 뒤켠에 월선이가 서 있었다. 흰 옥양목 치마에 명주 저고리를 입고 서있었다.
“옴마.” / “운냐, 울 애기야.” / “오, 옴마!”>

 

                                                                 ‘토지’ 13권 (4부 1권) P 94- 96

 

 사랑 없는 결혼으로 맺어졌던 강청댁의 강짜와 한 번의 실수로 얽힌 임이네와의 악연, 필생의 사랑 월선과의 업. 가슴에 숱한 사연과 그리움을 묻고 오롯이 한평생을 견뎌 낸 용에게 아들 홍의 독백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며 찬사가 아니었을까. 나 역시 이 한세상 두드러진 그 무엇 없이 평범하게 살고 마는 범부일진대... 홍의 독백과 같은 그 누구, 가족의 인정이라도 감히 기대할 수나 있는 것일까? ‘도리를 잃지 않고 무섭게 견디고 내 존엄성을 지키며’ 이 세상에서 범부의 삶을 마칠 수나 있을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그 순간 홍이 눈에 비친 월선의 환영,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용과 월선의 장면마다 울컥했던 순간들이 떠 오른다. 묻어 둔, 가슴 시린 사랑의 기억이나 있었던가, 아니면 꿈꾸지도 못할 운명적 사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인가, 또 눈가가 촉촉해 진다. 정말 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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