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못할 소설 속의 명장면 1
<홀어미 침모의 딸 봉순과 종 아닌 종 길상의 풋사랑. 나이가 차면서 서로가 느끼던 애틋함이 깊어지자 길상에게 부끄럼을 빛내며 마음을 드러내는 봉순과 자신에 대한 자학으로 봉순을 ‘화냥기 있는 가스나’로 매도하며 거부하던 길상. 간도로 떠나는 서희를 대신하여 구례로 가마타고 가야하는 봉순에게 이별을 직감한 순간의 장면,
“지가 못 가더라도 시일 안에 부산으로 따나야 할깁니다.”
봉순의 말이 옳긴 옳았다... 처음부터 위험이 따른 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길상은 봉순의 저의를 안다... 길상은 그 뒤를 바싹 따르며
“봉순아”
“......”
“우리 거기 가믄 호, 혼인 하자. 어떡하든지 무사하게 진주로 가야 한다!”
“......”
“내 맹세하라믄 하,하지.”
그러나 봉순은 뛰기 시작했다.>
‘토지’ 1부 4권 416p
이루지 못한 풋사랑은 어디 한둘이었으며 가슴 한 켠, 생채기 같은 기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품었던 마음 한 번 제대로 말로 뱉어 보지도 못하고 끝내 갈라 설 수밖에 없었던 소설 속 어린 남녀의 이별 장면이 싸늘한 겨울날 오후, 식어버린 중년의 가슴과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돌아간다손 치더라도 다시 이루지 못할 숱한 사연들에 보내는 정념이 유행가 가사처럼 ‘강 건너 등불’같다.
2017. 12.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