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nocent
Graham Greene 지음
김미성 옮김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2: 2 - 3
그는 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12년을 자란 곳,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했던 비숍헨드런을 아주 우연하고도 속된 계기로 -그는 전날 밤 술집에서 우연히 롤라라는, 하루 저녁 지내기 좋을만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인이 가고 싶다는 시골을 생각하다 우연히 떠올린 곳이 고향이었다. - 다시 찾게 되었다.
1.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지울 수 없다.
그는 그동안 30년을 지나면서 고향을 잊었다고 생각해왔다. ‘각별히 행복하거나 또 별나게 불행하지도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세월’이었으므로 ‘지금쯤 그곳에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그는 쉽게 단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억을 처음으로 헤집고 나온 것은 천진성의 기억이었다. ‘장작불의 냄새, 까맣고 축축한 鋪石에서 나오는 냉기’에서 그는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을 건져 올리게 된다. 서서히 룰라를 두고 혼자 있고 싶어지는 그의 뇌리에는 생생한 기억들이 연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모래둔덕과 같이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 살아나서 悲感과 향수를 자아낸다.’ 노부인의 교습소를 보는 순간 그는 ‘예전의 선율과 다른 피아노 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저 가을의 냉기와 서리가 묻어 축축해진 나뭇잎 탓에’ 유난히도 선명한 기억 하나를 건져 올린다. 그 보다 한 살 위였던,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소녀. 그녀의 손길에나마 닿고 싶어서 집착하던 술래잡기 놀이며, 댄스 교섭을 기회로 두 해 겨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의 손을 잡게 된 행운, 그녀가 상급반으로 옮기면서 맞게 된 단절과 안타까움...
‘소녀 또한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표현할 길을 찾지 못했다.’
2. 초라하게 망가진 기억의 조각들, 시간 앞에서.
그는 목조 대문의 구멍을 생각해냈다. 그가 정열에 가득 찬 사연을 넣어 두었던 곳. 그는 소녀에게 그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찾아보라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구멍 속을 더듬고 소녀가 사연을 찾지 않았던 안타까움을 기억해 내고는 그 사연이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문을 나서면서 나는 그 구멍이 여전히 남아 있는가를 살폈다. 그것은 남아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이 밀었다. 계절과 세월로부터 안전한 그 곳에 그때까지 종이 조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종이 조각을 끄집어내어 펼쳐 보았다. 그리고 성냥을 켰다. 안개와 어둠 속에 조그만 열기의 불빛이 있었다. 꺼져가는 조그만 불빛에 드러난 조잡한 春畵를 보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틀림없었다. 한 쌍의 남녀의 치졸하고 부정확한 그림 밑에는 내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순수하고 강렬하고 고통스러웠던 정열이라고 기억했던 것의 충격스러운 실체.
‘그 당시엔 무엇인가 독특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 그림이 음란하게 보이게 된 것은 30년의 생애를 보낸 뒤의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