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I Am Home(2019)
감독 : 박제범
출연 : 이유영, 강신일, 서영화, 황은후
1. 떠나지 못한다는 것.
젊은 시절 아버지는 우리도 아파트만 장만하면 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반대편까지 여행 한 번 가자며 엄마에게 여행 가방을 사주었다고 엄마는 훗날 딸 앞에서 회상한다.
인천의 낡은 주택가, 마당도 빨래를 말릴 만큼만 한,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둔 집, 그 속에 창도 없는 방에서 아버지는 살았다. 그런 아버지를 답답해하며 떠난 가족들은 다 잘 살고 있다는 딸의 대사에서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가족들을 옭아 매었는지 짐작하게 된다.
창을 내고 나면 집에 정이 붙어 오래 살 것 같아 창을 내지 않았다는 것도 훗날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워 열쇠를 고치고 시류에 따라 디지털 도어락까지 수리하게 된 제자가 새 차를 샀다고 자랑할 때 집을 먼저 사야지라고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본 딸은 아버지에게 그 집이 어떤 의미였는지 희미하게 깨달았을까?
한 때는 그나마 꿈이었고 위안이었던, 그러나 결코 스스로도 만족할 수도 없었으면서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었던 집. 집으로 은유된 수많은 집착들을 나 또한 떨치지 못했다.
2. 말과 답답함 그 사이 어디쯤
말을 했다면 달라졌을까? 정말 말을 하지 않아서 였을까? 말을 했다면 알 수 있었다는 것일까? 알면서도 말을 안한 것은 아닐까? 말이 의도대로 전해지긴 했을까? 말한 이의 의도는 과연 명확했을까?...
답답하다고, 말 좀 하라고 영화에서 딸은 아버지를 다그친다. 어떤 이유로든 오해가 생기고 그것들이 굳어져 단단해졌을 때 말은 말처럼 풀어 줄 수 있을까. 말로 소통하고 이해했다고 그래서 관계가 나아졌다고, 지나고 보면 말은 말이었을 뿐... 한 순간 상대를 이해했다고, 최소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가라 앉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착각들을 잊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간사한 말들이 우리들의 관계에서 난무했던가.
사람 사이에서 말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대의 이해와 위안이 필요하다는 것. 말을 하라고 서로가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게, 이해 받을 수 있게, 그래서 위안을 달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3. 그래 떠나야 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해 잠시 집으로 돌아 온 딸을 위해 수건을 새로 사서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집안을 청소하고 새로 밥과 찌개를 안치고, 딸이 좋아하는 복숭아 김치를 담그고도 아버지는 딸에게 언제까지 이 집에 있을거냐며 호통을 쳐서 딸을 내 보내고 만다. 부모라면, 마찬가지로 나는 내 딸들이 내 삶의 구죽죽한 차꼬들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비록 나는 석양 속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낡은 휴대폰으로 찍으며 선망할지언정 딸들은 그 비행기를 타고 푸른 하늘로 힘껏 솟구치기를 소망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대사처럼 내일은 내가 알아서, 고단했던 육신이 호젓하게 안치되어도 좋겠다.
잔잔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흔들어 놓는 강신일, 이유영의 인상적인 연기와 섬세하고 단정한(어쩌면 극중 아버지처럼 답답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들게 만드는^^) 박제범 감독의 연출도 마지막 장면, 희미한 희망이던 달력을 떼어 낸 흔적처럼 오래오래 가슴 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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