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2002)
감독 이창동 주연 설경구 문소리
나는 누구에게 어떤 순간만이라도 ‘장군’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또 누구는 나에게 오롯이 ‘공주’였던 적이 있기는 했었을까?
‘난 앞으로 널 마마라고 부를께, 공주마마.’ - 난 장군이라고 불러야겠네.
‘마마, 공주마마’ - 장군은 무슨 일 해요? 무슨 일 하냐구요?
‘자동차 정비’
‘여기 답답하지 않냐, 우리 외출할까’ 처음 종두와 외출한 공주가 휠체어에서 보던 하늘.
집으로 돌아 온 종두, 심방 온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하는 순간, 종두가 본 하늘,(두 하늘은 같은 하늘이었나?)
‘형님, 자동차 정비 일 좀 가르쳐 주세요...’
지난 날 한 때는 취생몽사, 월하의 연분으로 맺어진, 필생의 인연임을 의심치 않았던, 꿈 같은 날들이야 누군들 없었으리. 단숨결 같았던 봄날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장마와 폭염의 계절을 어찌어찌 건너, 소슬한 바람 부는 계절의 가운데에서 돌이켜 보면 아둔한 호기와 몇 자락 꽃잎 같던 낭만과 어둑한 관념을 붙잡고 궃은비 내리는 현실의 수렁을 둘이서 운 좋게 건너왔다.
영화 속 공주의 방, 조야한 Oasis 문구가 새겨진 벽걸이 천, 시선을 그윽하게 한 곳에 고정할 수 없는 공주의 눈에 비친 그 벽걸이의 나뭇가지 그림자는 어떤 종류의 불안이었나?
남루한 육욕으로 시작된 관심이, 공포와 절망이었던 존재가 승화되는 과정은 답답하지만 따뜻하다. 그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환상의 순간순간들.
경찰서 유치장에서 탈주한 종두가 자신을 쫓는 형사들과 이웃들의 성화 속에서 가로수의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장면은 느껍다. 그 순간 그는 그의 대사대로 ‘홍경래의 자손’인 장군인 것.
이제 앞길은 불안이 모래바람처럼 엄습하는 사막의 길 -‘엄습하다’는 표현이 적확하기도 하다, 어느 시점부터 까닭도 없이, 때도 없이 다가오는 불안이 뚜렷하게 인식되기 시작했으니- 회한과 불안 사이에서 황망한 날들 속에 환상 같은 오아시스라도 있을까 했는데 오늘 아침 인터넷 기사에서 만난 김혜자씨의 수상 소감은 환한 등불 같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을 Oasis처럼 살아낼 수 있을까? 설사 장군은 못되고 종두처럼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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