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부터 돌아 다녔으니, 장터와 시골마을을 헤메고 다닌 지 어언 5년이 되어 가는 듯 합니다. 일요일 미명이면 어김없이 집을 빠져 나와 밀양, 청도, 함안, 의령, 창녕, 고성 등 부산 인근 시골마을들을 여기 저기 누비고 다녔습니다. 눈에 익은 정든 산하, 내 조상들의 혼백이 묻혀 있는 땅, 나 역시 살고 있는, 그리고 내 아이들이 살아야 할 이 땅에서 질곡의 한 세월을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바짝 다가가서 찍고 싶었습니다. 그 분들 얼굴의 주름살을, 곱아든 손가락을 카메라 렌즈로 쓰다듬고 만져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분들의 얘기를 카메라로 듣고, 살아 오신 삶의 궤적을 사진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욕심은 갈수록 과해져서^^ 점점 사진에서 구도도 배경도 사라지고 인물의 얼굴이나 손등 또는 발등처럼 실체의 일부에만 집중하는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더 다가서서 마크로렌즈로 그 분들의 눈매나 입매... 콧잔등과 목선을 찍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거기까진 저도 무리인가 봅니다.^^)
거시적인, 그래서 주목받는 거창한 역사가 아닌, 누군가가 남기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 땅에서 살고 가신,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삶이 사진으로 모여 언젠가는 소담한 냇물 같은 역사가 되기를 꿈꾸면서 미련하다는 얘기를 들을 만치 열심으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 분들의 흔적을 찍고 싶었습니다.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마르고 닳도록 밟고 다니셨을 낡은 나무 문턱이며 손때가 묻고 녹이 슬어 버린 문고리들, 그 분들의 아침을 깨어 주었을 찌그러진 알루미늄 세수 대야며 마음조차 허전한 밤, 그분들의 야뇨를 받아주었을 스텐 요강 단지들, 헛헛한 마음으로 내다보았을 문창살이며 우물가 깨진 두레박이나 이지러진 절굿공이들이 그렇게 정겹고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밀양을 찾았습니다. 늘 마음속에 흠모의 기억으로 담고 있던 밀양시 산외면 기회마을 밀양박씨 천석군집 김 명희 할머님, 당당한 대갓집의 풍모도 그러려니와 한 집안의 위엄과 역사를, 존재 자체로 보여 주시던 할머니를 그 동안 말은 못해도 존경해 왔나 봅니다. 6월 4일 새벽, 대문을 열고 사랑채로 들어서는데 사랑채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내다보는 젊은 여인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얘기, 할머니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비보였습니다. 한 동안 사랑채 마당을 멍하니 보다가 사진도 몇 장 못 찍고 돌아 나왔습니다. 김 명희 할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생전의 모습과 그날 찍은 문짝 사진을 올립니다.
1. 2008년 5월 3일 M3 50rigid TX D-76
2. 2011년 6월 4일 M3 50 1.0 TX rodinal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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