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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poésie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 II


"崔興孝는 온 나라에서 글씨를 제일 잘쓰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응시할 적에
시험 답안지를 쓰다가 글씨 한 자가 왕희지의 글씨체와 꼭 닮게 써졌다. 그래
서 종일토록 들여다 보고 앉았다가, 차마 그 글씨 한 자를 버릴 수가 없어 시
험 답안지를 가슴에 품고 돌아와 버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해득실 따위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이를 만 하다.

李澄이 어릴 때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그가 있는
곳을 모르다가 사흘 만에야 찾아냈다. 부친이 노하여 종아리를 쳤더니, 울면
서도 떨어진 눈물을 끌어다 새를 그려냈다. 이쯤 되면 '그림에 빠져서 영욕
따위는 잊어버렸다고 이를 만 하다.

鶴山守는 온 나라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산속에 들어
가 노래를 익혔다. 노래 한 곡을 마칠 때마다 모래를 주워 나막신에 던져서 그
모래가 나막신에 가득 차야만 돌아왔다. 그러던 중 도적을 만나 죽게 생겼는데
그가 가곡을 부르자 도적들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쯤되면 '死生따위를 마음속에 두지 않는다.'고 이를 만 하다.

큰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어 어진 이를 좋아하기를 여색 좋아하듯이 하는 사람
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기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마저도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는
것이로구나."

박지원 炯言桃筆帖序 중


취미로 하는 사진이라고 자위해 왔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뜻대로 되지 않
아도, 다른 이들에게 울림이 없어도 내가 좋아서 하는 사진이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좋아하는 소재들을 골라 별다른 고민없이 마구잡이로 찍어대고 현상하면서 한 편
으로는 혼자 웃고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남들이 카메라를 보고 감탄하면 내심 흐
뭇하면서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사진으로 담고 싶은 마음의 심상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찍고
어떻게 현상할 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야겠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한 롤을
날릴지라도, 필름 한 롤을 현상할 때마다 모래알을 던져 내 구두가 가득 차도록
하고 그 구두가 수십켤레가 쌓일 때까지 정진해야겠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이 그를 보는 다른 이들의 가슴에 눈물자국으로 아름다운 형상
을 만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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