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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poésie

門 II 고집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억지스런 합리화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가소로운 자존심을 앞세워서 먼저 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문을 열거나 나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방법을 몰랐습니다. 어떻게 고리를 따고 열어야 하는지 어떡해야 내가 먼저 열어도 쑥스럽지 않을런지 마침내 열고 나면 또 어째야 하는지 망설이고 더듬거리다 시간이 갔습니다. 아니 정말은 무서웠습니다. 열고나면 보여야할 부끄러운 속살들이, 속으로 고여 있는 역겨운 냄새들이, 아니 문을 열고 당신을 맞아서 당신의 부피만큼 나를 비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습니다. 문고리도 부숴지고, 칠도 벗겨졌습니다. 애써 열지 않아도 여기저기 삭아내린 부분들때문에 더 이상 감출 수 없어 삐걱거리며 .. 더보기
門의 본질은 ‘닫힘’이다. 누군가의 闖入을 막아주고 窺視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 문의 본래 소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의 역할이라면 담을 쌓고 또 문을 낸 까닭은 무엇인가. 그러고 보면 문의 또 다른 본질은 ‘열림’이다. 그러나 그 열림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어서 때로는 까다로울 수도, 어떨 때는 까닭도 없이 한없이 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風磨雨洗로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 앞에서 문고리를 열어주던 이의 손길, 문지도리로 열치고 들어서던 이의 땀내음, 문지방을 넘어서던 신발들에서 떨어져 내린 흙들과 그들의 옷자락이 스쳤을 흔적들. 그 앞에서 당당하고 또는 가슴 떨렸을, 아니라면 조바심치고 비참하게 돌아서고 말았던, 이제 문은 남았으나 그들은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 더보기
나도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 옛사람이 높은 선비의 맑은 향기를 그리려 하되, 향기가 없기로 蘭을 그렸던 것이다. 아리따운 여인의 氷玉같은 심정을 그리려 하되, 형태가 없으므로 梅花를 그렸던 것이다. 붓에 먹을 듬뿍 찍어 한폭의 대(竹)를 그리면 늠름한 장부, 불굴의 기개가 서릿발 같고, 다시 붓을 바꾸어 한 폭을 그리면 소슬한 바람이 湘江의 넋*을 실어 오는 듯 했다. 갈대를 그리면가을이 오고, 돌을 그리면 고박(古樸)한 음향이 그윽하니, 神技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기에 예술인 것이다. 종이 위에 그린 풀잎에서 어떻게 향기를 맡으며, 먹으로 그린 들에서 어떻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이것이 心眼이다. 文心과 文情이 통하기 때문이다. -중략 - 문인들이 흔히 대단할 것도 없는 신변잡사를 즐겨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생의 편모와 생.. 더보기
Waiting for Gisselle Toeshoes가 없는 아이는 발레가 꿈이라고 했다. 한여름 뙤약볕 너머 골목길, 뒤축을 잘라낸 젤리슈즈에 리본 대신 혀 낼름 하곤 끈을 감는다. 더보기
승천할 수 있을까 눈물들도 말라 버렸을까. 집착들이 낡아져서 나부끼는 아침. 배가죽이 열리고 텅 비워져 새로 넘나드는 바람 한줄기. 내가 바람인지 바람이 난지. 남은 꿈도 비워야하는 시간. 승천할 수 있을까, 서글픈 영혼들도. 신의 위로처럼 번뜩이는 햇살. 더보기
학야리에서 다시 학야리에서 1 하얀 졸음같던 형광등 아래 밤새 투닥이던 타자기 소리 충혈된 눈 자위 부비며 움켜넣던 새벽 2시 辛라면 가락. 내 나이 스물 여덟살. 한여름 소금기로 남은 건봉사 지나 냉천리의 유격장 혹한기 텐트 속에서 졸여 먹던 건빵의 기억. 지겹게도 무덥고 모질게도 시리던 15년 전 학야리. 잊고 살다가도, 까맣게 잊었는가 하다가도 사단기동훈련 일주일 내내 벗지 못해 생긴 군화속 무좀이 다시 살아나고 겨울 길목에선 영화 20도 탄약고 새벽근무 귓볼 동상으로 오늘도 가렵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햑야리. 2 아내는 울고 있었나. 결혼하고 딸랑 90일 만에 훌쩍 입대해버린 남편을 찾아 부산에서 속초까지 밤을 세워 달려와선 그 짧은 하룻밤, 낯선 여관을 뒤로 하고 속초발 시외버스에 오를 때면 어슴푸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