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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poésie

친구야 함께 한 시간이 오래구나 벗이여 창창한 패기와 산뜻한 외모도 시간이 흐르면 바래겠거니 했지만 모두들 그렇듯 우리 역시 그렇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서글프구나 벗이여 기름기가 빠져서 헤진 것들 이슬이 말라붙듯 사라진 것들 이제는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는 것들 살가운 체온마저 사라진 것들 서로의 관심에서 버려진 것들 모두 바람이 부시시한 겨울날 저녁 어둑해서 아득한 골목 끝까지 함께 가자꾸나, 호젓하게. 서러워서 아름다운 친구야. 더보기
그대여 왜 여기까지 왔을까요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까요 아지랑이 일렁이던 햇볕도 사라지고 바람소리 쓸쓸한 울음마저 잦아든 뒤 겨울 강가 누더기로 낡아가는 나에게 따뜻한 피가 도는 그대의 손 한쪽 손이라도 얹어주세요. 제발. 더보기
새벽달 大橋를 뽐내던 孟浪한 불빛이 희미하게 사위어 가는 새벽 바다도 검푸르게 잠을 깨는 시간 살다 보면 모든 일이 뜻대로던가 구겨진 바짓가랭이 툴툴 털고 일어서면 발자국마다 뭉개지는 절망과 희망. 꿈에서 깨어보니 현실이던가 섬뜩하게 明澄한 새벽달처럼. 더보기
<환상을 쫓는 여인An Imaginative Woman> 을 읽고 Thomas Hardy 장 경렬 옮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살림 1996) 일상적 행복은 無味한 것인가? 총기제조업자인 월리엄 마치밀과 엘라 마치밀부인은 적어도 잘 어울리는 부부다. 서술자의 언급처럼 나이도, 용모도, 집안 형편도 그렇다. 사소한 문제라고 하는 성격도 마찬가지다. 정신적으로 언제나 사업에 몰두하는 남편을 아내가 천박하고 물질주의적이라고 생각하든, 詩神을 숭배하는 아내의 우아한 취미를 남편이 유치하다고 여기든 그만큼 다들 다소의 차이 정도는 안고 사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차이가 내면 깊은 곳에서는 서로를 끌리게 하고 그 만큼 그 부부의 삶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남편을 향한 아내의 혐오와 폄하는 현실감각이 부족해 보이는 그녀의 철저히 주관적인.. 더보기
치바이스齊白石의 정문일침 나는 전각을 할 때 글씨를 쓰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했다. 붓이 한 번 간곳은 개칠하지 않듯이 각을 할 때도 칼이 한 번 지나간 데에는 절대로 다시 칼을 대지 않았다. 내 刻法은 종과 횡으로 각각 한 칼씩 단 두 방향 으로만 새긴다. 다른 사람들처럼 종과 횡으로 왔다갔다하며 여러 방향으 로 새기지 않는 것이다. 어떤 전법이 고상한지 또 어떤 도법이 건전한 지 는 전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보면 곧 알 수 있다. 그리고 각을 할 때 글씨의 필세에 따라서 새겨나가지 먼저 돌에 글자를 써 놓고 새기지 않는다. 내 도법이 마치 글씨에서 느껴지는 필력처럼 힘 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 이다. 도장을 새길 때 이리저리 도려 가며 한참동안 새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누 구 누구.. 더보기
Exhibition 라이카클럽 2회 전시회, 최성호 선배님과... "클럽 전시회 초대의 글" "한숨쯤 생각하고 가도 늦지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의 삶 가운데 둘러가는 길에서 만나는 낯익은 일상들의 수수한 모습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찔한 속도감으로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거리에서 찬연한 햇살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을, 하루의 노동을 수습하는 모닥불 연기 주위로 둘러 앉은 농부들을, 빗방울이 떨어지는 연못가 소곤거리 는 우산들의 대화를, 노쇠한 할아버지의 골 깊은 주름살 사이로 피어오르는 웃음들을, 긴 그림자 를 남기며 석양속을 내닫는 어린 아이의 경쾌한 몸놀림을, 쓸쓸한 포도위 구구거리는 비둘기떼를 내려다보는 처연한 등허리를, 흐르는 석양을 등지고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는 몽상가.. 더보기
風葬 아득히 빛나는 태양의 따뜻한 입김과 소금기 밴 공기에 일렁이면서 오래도록 주름진 머리와 꼬리들로 우리 다시 만나는구나. 켜켜이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빛나던 한 때의 은빛 청춘도, 힘차게 요동치던 유선형 젊음도, 푸른 심해수처럼 맑게 그늘지던 우리들의 사랑도 이젠 다 벗어 놓고 이렇게 적나라해지는구나. 시간은 덧없어 뿔뿔이 흩어지고 모든 가식과 모든 절망과 차마 내어놓지 못한 몸 속 가장 깊은 곳 치부까지 말끔히 들어내고 우리 가장 순수하게 섞이는구나. 비워져서 오히려 맑은 영혼으로 멀리서 빛나는 태양과 일렁이는 짭조롬한 바람 속에서 우리 더욱 맑게 바래어 가는구나. 더보기
夫婦 그대가 맑게 일렁일라치면 나는 툴툴거리는 남루한 천조각. 내가 문득 방울방울 아롱지면 반쯤 비워내고 마지못해 어스름 몸짓으로 옆에 와 있는 그대. 09. 6. 28 密陽 丹場 M3 50rigid TX Rodinal 1:100 4000ED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