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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poésie

모래알의 독백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부딪히며 흘러 온 시간들마다 몸부림 하면 할수록 깊숙이 파고 드는 절망의 고랑들. 씻기고 닳아가다 보면 방법만이라도, 사랑하는 방법만이라도 희미한 자국처럼 남으리라던 가소로운 기대마저 쓸려가 버렸나. 바람따라 또 다시 파도가 치고 가면 간신히 버팅기는 초라한 내 발가락들. 더보기
Memory is A many splendoured thing ! 초등학교 때부터 말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먼발치서만 바라보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중학교도 인근 중학교였고 고등학교도 가장 가까운 여고에 다녔던, 얼굴보다는 분위기로 순박 한 마음을 솔빡 가져가버린 여학생. 까까머리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두운 골목길 그녀의 창아래 웅크리고 앉아서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던 조영남의 '불꺼진 창', 등교할 때 같은 버스만 타도 하루 온종일 기분이 들떴던 시절, 정작 같은 대학을 가고도 말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했 던 그녀의 고등학교 시화전에서 보았던 그녀의 시가 이상하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 목이 목련이었던가! "목련이 핀다 봄을 앞서 이조백자 그 봉긋한 몸짓으로 아직도 파아란 가지 사이 아느작 새하늘인데 속심으로 오른 지열 송송 맺힌 자태여" 더보기
꽁지의 노래 언제나 우린 '뒤'였었지 아니 '끝'이었나 어떤 이는 '꽁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꼬리'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더군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머리'가 아닌 바에야. 용을 써야 하는 건 그래도 우리였지만 앞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갈 것인지 우리에겐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지. 그래도 어떻게든 가보고 싶었지 무지개빛 햇살이 아롱지는 한바다 그 가운데. 아니면 차라리 아무도 닿지 않았을 깊은 심연, 아득한 그 어둠 속으로라도. 그런데 지금 여기는 어디? 더보기
문 좀 열어 주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제발. 가을 저녁 쓸쓸하게 당신과 이별한 후 지난 겨울 한 철은 가혹하기도 했지요. 살을 파는 바람을 꼭꼭 감춘 자신으로 견디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봄볕은 가당치도 않았겠지요. 누추한 팔을 뻗어 새 잎을 내고 먼지 앉은 당신 가슴에 기대어 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그대여. 더보기
아직도 남았을까? 아직도 남았을까 몽매의 불꽃은 가실 줄 몰라 처음에는 심장에서 불길을 지피더니 오장육부 깡그리 태워 없애고 육신의 가죽마저 재로 만들고도 오히려 그을려 바래진 갈비뼈 가닥 위에 덩그렇게 매달린 정념의 고리. 더보기
열리는걸까요? 황폐한 곳으로 스며드시는군요, 당신께선.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을만치 이해타산의 垓字를 파고 옹졸과 아집의 성벽을 세워 남루한 자존심의 깃발을 내어 건 음습하고 어두운 그 안으로. 눈부신 손바닥을 찰랑대며 당신의 초록세례를 내려주신다면 이 아둔한 가슴, 정말 열리기는 열리는걸까요? 더보기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 II "崔興孝는 온 나라에서 글씨를 제일 잘쓰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응시할 적에 시험 답안지를 쓰다가 글씨 한 자가 왕희지의 글씨체와 꼭 닮게 써졌다. 그래 서 종일토록 들여다 보고 앉았다가, 차마 그 글씨 한 자를 버릴 수가 없어 시 험 답안지를 가슴에 품고 돌아와 버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해득실 따위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이를 만 하다. 李澄이 어릴 때 다락에 올라가 그림을 익히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그가 있는 곳을 모르다가 사흘 만에야 찾아냈다. 부친이 노하여 종아리를 쳤더니, 울면 서도 떨어진 눈물을 끌어다 새를 그려냈다. 이쯤 되면 '그림에 빠져서 영욕 따위는 잊어버렸다고 이를 만 하다. 鶴山守는 온 나라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산속에 들어 가 노래를 익혔다. 노래 한 곡.. 더보기
뜻없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기약조차 못할 말도 많았습니다. 화사한 얼굴빛으로 다듬고선 상대에게 다가가 걸었던 말들, 이루지 못할 줄을 염려하면서도 용납되지 못할 것을 짐작하면서도 욕심을 앞세운 말들도 많았습니다. 명분없이 남을 할퀴던 말들, 실속없이 시간을 축내던 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정작 해야했던 말들은 고스란히 먼지처럼 쌓였습니다. 소중했던 사람들이 듣고팠던 말들도 결국은 남고 말았습니다. 뜻을 만들고 일을 이루고 선을 짓는 말들도 마음속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서로의 입들을 쇠창살에 꿰고서야 무거웠던 말들이 허공으로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햇살속으로 사라지는 사연들을 바라보는 퀭한 눈알들도 말라갑니다. 더보기